바울은 신학으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신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행 5:34; 22:3)
그래서 바울은 당대 손꼽는 신학자였고 랍비였습니다.
그러한 바울에게 스데반 집사의 명설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뛰어난 신학이 자신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못보게 했고
그 명설교를 듣고도 예수님을 못보게 했습니다.
그렇게 신학은 바울을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경험하면서 단번에 변화 되었습니다.
그의 신학은 그대로였습니다.
그의 신학으로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경험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변화는 예수님을 경험하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학으로는 전화 변화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신학을 통해 예수님을 경험하면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수 없는 사실은
변화는 결국 예수님을 경험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경험하면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만나시기 바랍니다.
만나셨으면 또 만나시기 바랍니다—사귐은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만나시기 바랍니다—사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귐에 따르는 변화된 삶도 즐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