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하는 다니엘입니다,,, 다음의 것은 중요합니다,,, 아주 아주,,,
무슨말인고 하니,,, 저 다니엘의 글을 따라온 사람들은 알것입니다...사실 상.. 지금의 진행되는 상황들을,,,
그런데,, 이 최 근자에,,, 저 다니엘이,,, 이제 이 주님의 재림에 대해,,, 여러가지로 어떤 결론,,같은 것,,, 에 도달했다고 할 까,,, 우리가 그 동안,, 신학이란,, 인문학의 잘못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진리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의 부재로 인해,, 많은 부분,, 진리가 아닌데,, 진리로 오도된채,, 교회란,종교를 통해, 소위 진리(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채,,
정통으로 가르쳐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기서 시작한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기에서 계속,,,
그 속에서,, 뭔가를 찾아왔던 것 같은 것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 다니엘이 이번에,, 겪은 여러가지로 인해 참으로 생각하는 것이 많습니다..
아니.. 사실인즉,, 이것은 이미오래 되었습니다..
단지,,, 단지,,, 아직은 제가 100 % 라고 ,, 단언하기가 어려워 머뭇머뭇 해 왔던 것을 이제 다음의 글,,, " 하늘샘 " 님이란,, 미국의 어느독자께서,,, 아주 아주 중요한 글을 긴 댓글로서 달아주어,,, 저 다니엘이 그 글을 여러번,, 여러번 숙고해서,, 읽어보고 읽어보고,,
정독해서,, 완전히 이해되었다 싶어 이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여러분 !
뭔가 울림이 있길 원합니다... 진리의 글을 읽을때 여러분 각자에게,, 성령,,그리스도의 거룩한 조명이 있길 원합니다.
아멘.
- 번역하는 다니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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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은 인간의 선악지식을 좇아 생의 최종적 승리를 바라는
'첫 사람' (옛 사람, 자아)' 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근원과 궁극이라" 하셨는데,
'에스카톨로지 (종말론) 는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에고 에이미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 할 때의
그 '나중 (에스카토스)'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음과 나중' 의 '나중' 이 '종말' 로 오해되고, 거짓된 믿음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은
야웨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창조' 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종말론을 좇는 이들은 야웨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나' 안에 '영의 나' 가 낳아지고
그 둘이 온전한 하나로서 '나의 나 됨' 을 이루는 새로운 시간, 곧 영의 시간,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
수직적 시간, '하나님의 아들 됨' 의 시간인 '카이로스' 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만 육신의 시간인 '크로노스' 에서 그 '크로노스' 가 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수평적인 시간, 영적인 낮이 오지 않는 육신의 시간,
해가 뜨고 지는 인생의 시간인 '크로노스' 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크노로스' 에서 살던 사람이 '카이로스' 에서 살게 될 때,
'크로노스' 를 '처음 (프오토스)' 이라 부르고, '카이로스' 를 '나중 (에스카토스)' 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 (행 1:7) 했습니다.
여기 '때' 라고 번역된 말이 '크로노스' 이고, '기한' 이라고 번역된 말이 '카이로스' 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종말을 믿고 그 종말이 올 것을 소망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자기 믿음' 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 은 '크로노스' 가 끝나는 한 시점을 '종말' 로 여기고,
그 때에 많은 사람이 멸망당하는 가운데 자신은 임금의 자리에 오르려 합니다.
인간의 욕심의 발로 중 이 이상 큰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하나 된 이들에게는 '에스카토스' 가 무엇을 말할까요?
'에스카토스' 는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새롭게 짓기 시작하시고 마침내 그 일을 마치시는 '영의 시간' 입니다.
(또한 진리를 율법으로 밖에 알지 못하는 어둠 속에 있던 땅 적 성전으로서의 '나' 를 상징하는 역사적 첫 성전,
돌 성전, 예루살렘 성전, 율법 성전이 실제로 무너진 시간,
그리고 육신의 예수인 둘째 성전, 내 바깥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그 무엇을 위해
내 열심으로 내가 지키고 섬기는 대상으로서의 예수 성전이 무너지고,
내 안에 진리, 언약으로 된 영의 성전 [새 마음, 새 하늘], 셋째 성전 [제 3 성전, 완성 성전] 이 세워지는 시간,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 되는 시간, 내가 성전이 되는 시간입니다.)
가령 사람의 나이가 백 세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를 새롭게 지으시는 하나님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크로노스' 로는 백세일 지라도 '카이로스' 로는 하루도 맞이하지 못하고 여전히 '밤'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크노로스' 의 종말을 원하는 이들은 그들의 선악 지식 (자신에게 유리하면 선, 불리하면 악) 으로
하나님을 부르고는 있으나, '카이로스' 의 한 날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새 창조' 안으로 들어온다면, 비로소 '카이로스의 한 날' 을 맞이하고,
'그 날' 에 '크로노스 (처음)' 로부터 '카이로스 (나중)' 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의 유월절로 징조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의 시대가 '크로노스' 입니다.
'첫 사람' 은 모두 '크로노스' 에 갇혀 있습니다.
거기에서 해방되어 생명과 사랑과 거룩의 시대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카이로스' 가 시작된 것입니다.
만약 그가 '카이로스' 안에서 온전한 둘째 사람인 '나의 나 됨' 을 이루었다면,
그는 '크로노스' 시대를 마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하나 된 믿음은 자신의 육신의 크로노스' 를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그가 이루었던 그의 '첫 사람의 세상', 곧 '그의 하늘과 땅과 바다와 거기에 있는 모든 것' 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하늘이 떠나가고 땅의 체질이 뜨거운 불이 타는 그 일' 을 겪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희생제사 드리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일,
영적으로는 내 안에서 율법적이고 초보적인 신앙 체계, 선악지식에 의한 자아적 신앙 체계가
무너지고 불타버리는 일) 그 일이 일어나는 때를 '에스카토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카이로스의 삶을 사는 이는 크노로스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육신 안에서 살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하나 된 믿음으로 살고 있으면 반드시 그렇습니다.
이로서 '종말론' 의 허무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근원 안에 하나님이 그 땅과 그 하늘을 창조하시니라.
(뻬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 샤마임 베 에트 하 아레츠)
모든 번역 성경들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태초' 가 있었으니 '종말' 이 올 것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라고 번역된 '베레쉬트' 는 '태초에' 가 아니라 '근원 안에' 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이건 사람이건 근원 안에 창조하셨고, 근원으로 말미암아 존재되게 하시며, 근원 안으로 이끄십니다.
번역 성경들에서 '시작' 과 '끝' 으로 번역된 '아르케' 와 '텔로스' 는 '근원' 과 '궁극' 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근원이 되시고 궁극이 되십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런 '종말' 이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밖에 있는 자는 어떠합니까? 그의 삶 자체가 잃어진 삶이요, 종말의 삶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종말 속에 있는 것인데, 그에게 무슨 종말이라는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
그런즉 종말에 구원되려는 자마다 이미 자신의 종말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종말론' 이 종말을 맞지 않는 한,
아버지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로 번역되었지만,
그 원래의 뜻은 '그 진리가 된 자들의 마음 (하늘들) 안에 계신 그 아버지는 그 이름 (말씀) 이 깨끗하다' 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원래 뜻하신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가 되어 진 우리 안에 곗기 원하시는데,
진리를 알아 깨닫고 간직하여 진리가 되어 지지 못하면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실 수 없고,
우리가 그 상태가 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원하심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진리가 된 우리 안에 계신 그 아버지의 이름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이름' 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진리가 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들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 하늘들 (진리가 그 마음에 있어 마음 하늘이 된 자들) 안에 아버지와 함께 있고,
그들의 그 이름 (진리의 말씀) 이야말로 거룩하다 (깨끗하다) 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 나라는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섬기시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섬김을 받아 이제 다른 이들을 섬겨주는 '참 집사 (디아코노스)' 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바로 '그 나라가 임하는 것' 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하늘과 땅은 단수로 쓰였습니다.
복수로 쓰인 하늘은 진리가 되어 진 성도들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단수의 하늘과 땅, 즉 성전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땅에 있는 성전,
즉 가짜 (실제를 설명하기 위한 모형) 성전으로 제시해 좋으신 그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그 약속은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져 있지만,
그 하늘의 뜻을 땅에서는 땅 적인 성전 (모형) 으로밖에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그 진짜를 알게 하기 위해 가짜를 땅에 두신 그 성전을 통해 진짜 성전을 알게 되면,
그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이 됩니다.
'그렇게 되어지는 것' 이 '기노마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앞에서 말씀한 그 '섬김 (디아코네오), 그 나라' 가 임해야만 합니다.
그 섬김이 없이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 섬김이라는 것은 하늘의 것을 땅에 모형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짜로 보여주신 것을 원래 아버지가 의도하신 뜻으로, 진리로 잘 알아보는 것이 '들음' 입니다.
그래서 '들어라 이스라엘아 (쉐마 이스라엘)'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들음 (보여주시는 것을 잘 알아봄)' 이 이루어지면 알게 되지만, 그것은 지식적인 앎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 앎은 '되어 짐' 까지 가야합니다.
우리에게서 잘못된 '종말론' 이 종말을 맞고, '그 나라 (섬김) 가 임하고, 그 뜻이 다 이루어지기' 를 바랍니다.
이상은 진리의 말씀을 설명해 주신 분들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 아울러,,, 이 긴 글을 저 다니엘이 볼수 있도록,, 그 긴 시간을 들여 기록해 주심,, " 하늘샘 " 님께서,, 그 정성과 수고를 저다니엘이 섬기는 주님께서 온전히 갚아주시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