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 http://blog.daum.net/danieell/15715073
---------- 계속 번역 4 에서 부터 -----------
얼마나 우리가 우리자신스스로를 속이는지,, 우리가 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하므로 왜냐함, 우리가 가난하고, 혹은 도움받지 못하고, 혹은 아프고, 혹은 궁핍한자들을 향해 동정과 자비를 보일때,, 하지만 한 개인으로 하여금 반대하고,, 곤란하게(씨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옳다 생각하고 믿는 그러한것들을 두고,, 그리고서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당신의 자비와 동정이 계속하여 강처럼 흐를것인지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의(로움)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고, 심지어 우리가 그분의 말씀의 지시함에 반대하고,곤란해 할때조차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여러번 나는 바로 그러한 생각들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늘,, 내가 역시 , 그분의 자비와 동정이 여전히 강처럼 계속해서 나를 향해 흐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이는 바로 내 의(로움)가 하나님 그 자체이신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꿔놓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때,, 기억컨데 내가 어떻게 나의 (공)의 에 관련된 그 진실(진리)앞에 시인을 하게 되었던지 ; 그리고 어떻게 내가 이제 전적으로 이사야, 바울, 다니엘의 의견에 동의를 하는지,, 주님이 그들 각자에게 그들 자신의 의에 대해 보이신 그것과 관련하여. 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65:4 절에서 " 우리 모두는 더러운 것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 전부는 더러운 헝겊조각(생리대 헝겊)과 같습니다 ". 명백히,, 다른이들을 판단하고,,비난하는 자들은 눈이 멀어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들의 의가 생리대 헝겊 조각으로 있는지를,, 그들은 단지 그들 스스로를 높이려 시도하고 있으므로서, 그들이 그들 자신의 의에 반대되는 다른이들의 행위들을 심판하고,, 헤아리므로서. 주님은 욥기서 40:8 절에서 욥에게 물었습니다 "... 너가 나를 정죄할 것이냐 ,, 너가 의롭기 위하여 ? " 소경된 자들은 이러한 말씀을 읽었지만,, 그들은 볼수가 없습니다,, 그 곪은것의 심각성을, 혹은 그 성처들의 중함을, 혹은 그 두려운 것들을, 혹은 그들 혀의 칼이 그들이 판단하고, 흠잡고, 그들 스스로를 대적해 헤아리는 자들의 마음속에 일으키는 그 상처의 중한것을. 그 칼로 사는 자들은 정령 그 칼로 죽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한 말로서 심판받을 때에.
나는 또 기억했습니다,, 어떻게 주님이,, 그분의 교정함 가운데서, 내 눈을 열어,,, 정확히 이사야 57:12절의 그 말씀 " 내가 네게 너의 (공)의(your righteousness )와 너의 일함들을 보일 것이다, 그것들이 정령 네게 무익할 것임을. " 너를 기만하고, 너를 정죄하고, 너를 하나님의 그 생명에서 갈라놓는 그기에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 그기에 무슨 선한것이 있느냐 ? 바울이 꽤 잘 요약했다,, 그가 그 자신의 (공)의를 똥(배설물)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묘사했을 때, 이는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이 무익한(유익이 없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그 부끄러운것 혹은 그 무익한 것을, 혹은 그 어리석은 것을을 볼수 있느냐 ,, 하나님 그분이 그의 눈을 열어 그것을 볼수 있게 해주지 않음,, 옳은 것으로 믿어지고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는 그것을 ? 누가 굶주리며 목말라 할 것이냐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 자신의 (공)의(their own righteousness)에 대한 그 진실(진리)을 알게 된 자들 외에 ? 누가 주(님)를 충분히 신뢰 할 것이냐, 주님의 그 말씀을 믿을 만큼,, 우리속에 전혀 의(로움)가 없음에도,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신앙을 우리가 필요한 그 의의 전부로 여겨(간주해)주는 그분인것을, 바로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 처럼 ? 누가 믿을 것이냐 주(님)가 그들을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여,, 그분의 피, 그분의 은혜, 그분의 자비가 넉넉히 우리를 덮어서,, 우리의 불의(의롭지못함) 전부를 깨끗히 헹궈주는 것을 ? 어떤인간이 그러한, 더럽게 찌들고 깨끗치 않은것들을 회개할수 있느냐 ,, 그가 그 자신의 눈으로 그런 것들을 옳은 것으로 본다면,,?
내가 바울과 이사야가 그들자신의 의(로움)에 대해 증거한 그러한 것들을 보고 동의했을찌라도,, 여전히 주님의 나를 두고 하는 그 교정함의 더 큰 부분을 남겨두었습니다,, 바로 다니엘 9:7 절이 말하고 있는 그 부분을, " 여호와여,, (공)의 는 당신께 속한 것이고,, 우리에겐 얼굴의 혼란(수치)이 있습니다 ". Confusion(혼란) : 불안정함 ; 문제 ; 함께 섞은 것. 그것은 단순히 육의 정신입니다,, 그것이 내리는 모든 결정들과 판단들에서 옳 고파 하는 ; 그렇지만,, 이 의를 획득하기 위해 치려야 하는 그 댓가는 혼란 입니다 ; 항상 수많은 그 조언들, 의견들, 상상들,, 온통 비명을 지르며 나타나는 것들로, " 나예요, 나예요, 나예요! 내가 당신이 옳다고 붙들어야 할 그 당연하 것이여요! 나예요!." 라며. 확실히 이 혼란은 언제나 저 무지막지한 거짓말들로 된 보따리 수반하는 듯 보입니다, 그것들과 더불어,언제나 다소간의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혹은 긴장, 혹은 걱정, 혹은 두려움, 혹은 공포를 동반하고서,, 너가 너의 결정을 내리려 하는 동안. 너가 내리려는 그 결정이 중요하면 중요할 수록,, 그 만큼 더 그 혼란과, 그 악한 상상들,, 마찬가지로,, 우리 생각속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려,, 고문하러 나오는 것도,, 더 크짐니다..
주님(여호와)이 말씀이 요엘 3:14 절에서 이르길 " 판결(결정)의 골짜기에 많고 많은 (상상들)이니 : 이는 여호와의 날이 결정(판결)의 골짜기에 가까움이라 " ? 누가 그 무수한 밤들의 수를 셀수 있습니까 ,, 대부분의 밤을 깬체로 보냈던,,왜냐함 그의 정신속의 그 혼란이 그가 쉬도록 하지 않기때문입니다 ? 혼란시키는 상상들,, 무자비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당신을 상대로 두들기면서,, 그 정신을 혼란시키고 힘들게 하기 위해 ? 이것이 그 전장터 아닙니까 ? (고린도 후서 10:3-5 절의)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것을 붙드는 모두가 대항해 싸우지 않음 안되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말씀을 붙들고 있기 위해 ? 누가 하나님을 대적해 분투하며 싸웁니까 그들 자신의 상상하는 것이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들이 따르기에 더 의로운 조언(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자들 외에 ? 비록 그들이 처음엔 그들을 힘들게 한 그 혼란에서 다소간의 평안을 가지는 것처럼 보일찌라도,, 두려움, 혹은 혼란, 혹은 걱정, 혹은 자긍심, 혹은 긴장, 혹은 의심, 혹은 염려가 정령 다시 옮니다,, 그들을 괴롭히려,, 우리 모두가 매일 직면하는 그 결정(판결)함 속에서 ? 혼란에서 나온 어떤 결정이 정상적인 정신작용에서 나온 바른 지시라고 여길 수 있습니까 ? 하나님께 감사를,, 나의 혼란(혼돈)의 바람들을 잠재워주시고, 내 불안을 조성하는 파도들을 잠잠게 해주신 그분께,, 내가 오직 그분의 가르치는 말씀만이 그 조언,,내가 바르다 믿어야 하는,, 그 생각(조언)이라 믿기로 선택 했을 때..
* 참조 : 요엘 3:14
" 내가 나의 허물진 죄들 전부를 두고 묵상을 시작했을 때,, 이를테면, 모든 나의 자기-의의 일들,, 주님이 내게서 씻어 낸(정결게 한) 전부를 두고, 다시금 내 컴푸터 화면에 튀어 올랐습니다 : " 선택하십시오 상자 A 혹은 상자 B 를 " ; 상자 A 에는, " 이 서류철을 간직하고 유지하십시오 " 라고 쓰여 있었고, 상자 B 에는, " 이 서류철 속에 있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으로 당신이 그기에 맞춰 살필요가 없도록 하기위해서였습니다. * 주님, 내가 선택합니다,, 당신이 내 무익한 상상들,, 내 생각들에서 나오는, 그것 전부를 지워달라고 ; 내가 당신의 말 믿기로 선택합니다 "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지켜봤습니다,, 상자 A 아래쪽으로 저 로마서 1:18 절에 쓰여 있는 말씀 "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쫓아,, 모든 인간들의 경건치 않은 것과, 불의한 것(의롭지 않은 것)을 대적해 드러남이니 " 있었고,, 더불어 요한 1서 5:17절에 기록된 말씀 " 모든 불의함은 죄 니라 "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지켜봤습니다 상자 B 아래로 시편 23:1-4절에 쓰여 있는 그 말씀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내가 정령 부족함이 없으라. 그가 나를 (쉴 만한)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니 : 그가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심이라. 그가 내 혼을 소성시키시고(복구시키시고) : 그가 나를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찌라도, 내가 전혀 악을 두려워하지 않을것임이니 : 이는 당신께서 나와 함께 함이라 ; 당신의 막대기와 당신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함이라 " . 나는 거의 동시에 상자 B 버튼을 눌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 주님 당신의 의(로움)가 풍성한 생명을 가져다 주고,, 당신과 하나됨이 (풍성한)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 주님, 나의 모든 의를 내 기억애서 지워주시겠습니까 ? "
다시,, 내가 그 버튼을 누르자 말자,, 또 다른 서류철이 내 컴푸터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것들 " 이란 제목으로. 나는 모릅니다,, 이것이 내 눈 앞으로 나타났을 때 만큼이나 기쁨이나 즐거움을 유발시킬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 이는 나는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나를 두려움보다 더 크게 휘어 사로 잡아온 것은 결코 없었음을.
여기도 두려운 것들, 저기도 두려운 것들, 수 많은 두려움들, 두려움의 군단들, 두려움들이 많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당신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 고소 공포증, 고통 당함에 대한 두려움, 아플까 하는 두려움, 실수 할까 하는 두려움, 돈이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 내 자기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 을가 하는 두려움, 내가 통제 장악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내일 어떤일이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건강보험에 들지 않은것에 대한 두려움, 내 자녀들에 대한 두려움, 실패할까 하는 두려움, 옳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거짓된 비난에 대한 두려움, 주님이 나를 두고 내 죄나 연약함를 용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주님이 나를 위해 그분 말씀이 행하리라 말하고 있는 그것을 나를 위해 행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악한 죄에 대한 두려움, 내가 남겨질까봐 하는 두려움, 주님이 나를 위해 공급하지 않을것이란 두려움, 주님이 내 어려운 시기에 그 곳에 있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 바보로 보이지 않을 까 하는 두려움, 잘려나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계속, 계속, 반복되는 ; 힘들게 하는 두려움들, 고문해오는 두려움들, 마비시키는 두려움들 ; 걱정으로 변장한채 오는 두려움들, 혹은 공포로, 혹은 혼란으로, 혹은 염려로, 혹은 불확실한 것으로, 혹은 스트레스로, 혹은 온갖 방식의 악한 의심들을 부르는 망상(편집증)으로. 내가 믿을 수 없었던 것을 얼마나 많은 두려움들이 내 결정함들에 영향을 미쳐 왔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깨닫지 조차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건 확실히 내겐 그랬습니다,, 주님이 내게 처음,,,그것들이 내게 낳은 그 조언들을 믿지 않고서는 내 생각(사상)속에 두려움은 결코 자리를 잡고 머물수 있는 없다는 것이. 나는 어떤이에게든 말해왔습니다,, 주님께 구하여서,, 그들 눈을 열어 달라고,,그래서 그들이 분명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로마서 8:13-15절에 기록된 그것을 " 이는 만약 너희가 육을 쫓아 산다면,, 너희는 정령 죽을 것이다 : 하지만 너희가 영을 통해 정령 육의 행위들을 극복하면(억누르면), 너희는 살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너희가 다시는 종이되게 하는 영을 받지 않았고 ; 대신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이다, 이로서, 너희는 아바, 아버지 라고 외쳐부른다 " . 우리 중 누가 판단(심판)할 수 있습니까 ,, 그의 두려워 하는 모든 것들이 인간들을 그 어둠에 종이 되도록 묶고 있는 여러운 영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 만약 당신의 결정(심판)함들이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들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그때,, 당신은 누구영의 영향을 받아 인도받고 있습니까 ?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가지는 것이 가능치가 않음을 ; 어떻게 너희가 한 사람을 주인이라 부를 수 있느냐 너희가 종이되어 다른주인이 너희에게 조언하여 행하라 하는 것을 행한다면 ? 나는 생각하곤 했습니다,, 자긍심(일명 교만)이 어둠의 그 모든 요새(성채,본거지)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 나는 믿습니다 두려움이 더 큰 것이라고 ; 로마서 8:15 절에 기록 된 그것 때문이 아니라, 다윗과 골리앗 얘기속에 드러난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을 사울이 다스렸던 날에 많은 자긍심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들 앞에 나타난 그 순간,, " 모든 " 이러한 사람들의 그 자긍심과 힘은 녹아 없어져 버렸습니다, 물속에서의 Alka-seltzer(소화제산제의 일종,다니엘 주) 처럼 급속히. 누가 두려움에 종살이 하고 있습니까 정신들이 포로된 채,, 긴장(스트레스), 혹은 위협, 혹은 근심, 혹은 혼란, 혹은 걱정, 혹은 불확실, 혹은 공포, 혹은 악한 의심들의 바탕에서 생각하는 자들외에 ? 주님이 내 눈을 여섰습니다,, 두려움의 영이 행하는 것 같이,, 그 마음과 정신을 마비시켜놓는 힘(능력)을 가진 다른 영이 없는 것을, 분명하게 보도록. 어떻게 한 인간이,,그의 마음이 두려움에 노예가 되어 있는데 , 그가 , 그의 마음을 그들 더러운 영이 말하는 것 앞에 굴복시키고는, 그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그로 하도록 지시하는 것 행하는 것 외의 어떤것을 할수 있습니까 ? 만약 다윗이 오지 않았었더라면,, 모든 이스라엘은 그 팔레스타인(블레셋)인들에게 포로가 되어 노예(종)로 섬겼을 것입니다 ; 이는 그 날에 이스라엘이 그,,그들 두려움것들로 된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때문입니다 참 살아있는 신(하나님)이 아니라 ; 한 두려운 것,, 아주 거대해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그분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과 약속, 그분이 언제나 그기 있어 그들을 보호하여,, 방어해주며,, 그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그 말씀을 잊어버리게 했던 것입니다.
모든 내 경험함들 속에서,, 나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믿게 되었습니다 ; 이를테면, 나는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탄을 대적해서 싸우는,, 모든 그 귀신들과, 그 어둠의 지배자들, 권력들, 정사들(귀신의 계급들), 악한 영들,, 우리 정신속의 높은곳에 거주하는, 그들을 상대로 싸우는 그 유일한 힘은 여호와(주) 하나님 그분 자신인 것을. 그분은 우리의 방어시설이자 우리의 무기입니다 ; 이는 그것이 예배소서 6:10-13 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내 형제들아, 주(여호와)안에서 강하거라, 그의 능력의 힘 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그래서 너희가 마귀의 계교들을 대적해 설수 있도록. 이는 우리의 싸움은 살과 피로 하는것이 아니요,, 대신 정사들을 대적해서, 권력(권세)들을 대적해서, 이 세상 어둠의 지배자들을 대적해서, 높은곳의 영의 악한 것을 대적해서임이라. 이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너희가 악한 날에 저항할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것을 행하고서 서도록. 하나님의 갑주속에 예수가 아닌 것은 단 한가지 사항도 없습니다 ; 예수는 하나님의 힘이요 그 능력입니다,, 우리로 그 분속에서 악한 날에 설수 있도록 해 주는 ;
그 날,, 두려움들, 의심들, 믿지못함들,, 당신의 사고(생각)속으로 홍수처럼 밀려 오는 날 에..
그 전투가 벌어지는 곳 은 우리 정신의 상상들 속입니다, 하나님의 지시함과 조언들을 반대하며 버티는 그러한 모든 생각들을 대적하여 ; 바로 고린도 후서 10:3-5 절에 기록된 것 처럼 이는 우리가 육체로 걸어다니지만,, 우리는 육체를 쫓아 전쟁하기 않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전장 무기들은 육적인 것이 아니요,, 대신 하나님을 통한 강력한 것이니,, 강하게 붙드는 것을 헐고서,, 상상들과, 스스로를 하나님의 지식에 대적해서 높이는 모든 높은 마음을 내쳐 버리고, 모든 생각생각을 그리스도(진리, 진실)의 순종에로 포로잡음 으로서 이라. 악한 생각, 혹은 사악한 상상,,일딴 하나님이 그것들을 내쳐버린,, 그런것을 가지는 것이 가능합니까 ? 주님이 실재,, 자유롭게 풀어준 그(우리각자)가 그런 모든 생각들에서 자유롭게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 "
잠언 16:3 " 너의 일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럼 너의 생각들이 정령 설 것이다(구축될 것이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22:31-32절에서 말했습니다 " 그리고 주님이 말했다,, "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를 점유하고저 심해 원했다 너를 밀처럼 까부르기(체질, 갈라놓기)위해,, 하지만 내가 너를 위해 기도했다 너의 신앙이 실패치 않도록 : 그리고 너가 돌이킬 때에, 그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해라 ". 예수님이 그것을 이 단락에서 분명히 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믿음)을 사탄이 공격할 것임을 ; 그리고 바울 또한 이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가 말한 디모데후서 4:7 절에서 다음의 말을 가지고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내가 나의 믿음의 길을 끝냈다, 내가 그 신앙(믿음)을 지켰다(계속 가졌다)". 바울이 그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누구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습니까, 확실히 그것이 육과 피로서 싸우는 것이 아닌것을 ?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공격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베드로 전서 1:5 절에 기록된 대로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힘)으로 믿음(신앙,신념)을 통해 지켜진다 .... ". 사탄은 그의 믿음이 주님안에 있는 어떤이를 대항해서는 힘이 전혀 없습니다 ; 이는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힘)을 믿는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이 보호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사탄 공격의 그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신앙, 신념)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무기를 빼앗는)입니다.
두려움/자긍심, 의심, 믿지못함(불신)은 사탄 무기고의 3 가지 가장 강력한 무기들입니다,,왜냐함 그의 말로 된 그 무기가 믿어질때,, 우리의 주를 향한 신앙(신념)과 믿음은 그때 어둠의 힘들에 의해 정복 당합니다. 일단, 우리의 확신과 믿음이 정복되면,,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의 능력으로부터 분리됩니다 ; 일단 우리가 분리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연약한 한 마리 양처럼 , 사탄은 어스렁거리는 한마리 사자로서,, 우리를 삼킬 수 있습니다.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눈 보기에 크고 강력하게 보인것이 그 골리앗입니까 ?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신앙(신념)이었습니까 ? 그 폭풍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의 눈에 크고 강력하게 보인 것이 그 바다와 그 바람입니까 아님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신앙(믿음)이었습니까 ? 그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홍해바다를 뒤로 등지고 막혔을 때,, 그들 시야에 크게 보인 것이 그 애굽 군대였습니까 아님 그들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신앙이었습니까 ? 두렵게 보이는 그 조언들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인지된 상상들 외에 무엇을 일으킵니까 ? 오, 나는 이제 하나님이 나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을 볼수가 없어 ! 오,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냐 ! 하나님이 날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냐 ! 하나님은 날 버리셨어! 오 하나님이 날 구하지 않을 것이냐 ! 오, 하나님이 이 일을 날 위해 행하지 않을 것이냐 ! 오, 하나님이 날 사랑하지 않아 ! 오 , 이것은 불가능해, 하나님이라도 ! 난 알아 주님이 이제 날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오, 하나님이 날 위해 그곳에 있지 않을 것이냐 ! 이러한 두려움들이 나올때,, 그것들은 그 망상(불안감)들을 동반하고 옮니다,, 그 도와주고 사랑하고, 성실한,,돌봐주는 진실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이미지, 그 이미지를 악한 이미지, 사탄이 낳아놓은 그 거짓의 상상들에 비견되는 그런 이미지로 바꿔 놓으려는 불안들을 가지고서. 왜 인간들이 그들 마음을 굴복시켜,,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실 가운데서 말씀한 것을 믿기보다 ,, 그런 이런 두렵게 하는 거짓말로 된 조언들 믿는 것이 그렇게 쉬워 보일까요 ?
두려움들, 의심들, 믿지못함은 사탄이 사용하는 조언(모략)들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시선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서 그 상황들, 그 염려들, 그 환경들로 돌려놓게 하려는,, 우리로 우리 자신의 능력과 힘들로 촞점을 옮겨놓으려는, 마치 우리가 그 문제를 두고 통제할수 있는 것처럼. 골리앗, 혹은 그 (갈릴리)호수의 폭풍우가, 혹은 그 애굽 군대가, 혹은 어떤 환경, 혹은 상황이,, 우리 생각(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제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전혀 우리 정신의 사고속에 두려움이 없다면,, 그냥 완전힌 신앙(신념, 믿음)을 그분 유일하게 신실하신 참 하나님께 두고 있다면 ? 그게 다윗에게 미쳤던 그 두려움 만큼 킀을까요 ?
내가 그기에 앉은채로,, 이 문서를 보면서,, 나는 기억했습니다,, 내가 요한 1서 4:18 절을 읽었던 날을 " 사랑엔 전혀 두려움이 없고 ; 대신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 쫓는다 : 왜냐하면 두려움은 고문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그는 사랑에서 완전치가 않다" ; 내가 이러한 말을 읽고 있었을 때,, 갑자기 " 두려움이 없다 " 는 말이 나를 향해 그 페이지로부터 팍 튀어 올려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잠시동안 이 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 나는 물었습니다,, " 주님, 만약 당신의 사랑이 모든 내 두려움들을 내 쫓는다면,, 그럼, ,왜 이러한 두려움들, 스트레스(긴장), 걱정들, 염려들이 여전히 내 생각들을 채우는지요 ? " 그러자 주님이 내게 대답하여 이르길, " 너가 아직 그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함 너가 내게 너의 두려움들에서 해방시켜 달라(자유롭게 해달라) 내게 구하지 않은채로, 너가 안다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 " 너가 갇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음 때문이요 " 라는 것을. 나는 아무것도 행치 않는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으면, 그리고 그것은 너희가 내게 너희를 너희 두려워하는 것들에서 해방시켜 달라 내게 구할 때,, 그때가, 너희가 내가 이것을 너희를 위해 행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내게 의미하는 것이다. 진정코,, 나는 너희가 내 사랑이 하는 그 일을 받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너희가 내게 그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 사랑을 너흴 위해 보일 기회.. 너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그것은 정령 너희에게 이뤄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내 두려운 것들을 주님앞에 고백하기 전 내가 들으야 할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 두려움의 영이 아주 강해서,, 그것이 예수님이 다음처럼 " 이와 같은 류는 많은 금식과 기도외엔 나가지 않는다" 라고 지적하여 말하고 있었던 그러한 영들중의 하나임을 알았을 때에..
나는 계속해서,,기도했습니다,,그것은 결코,, 쾅 하는 큰 천둥소리 혹은 번개 광선같은 것으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내 두려움들을 불러 일으키는데,, 사용되었던,, 어떤 환경들, 혹은 어떤 상황들이 일어났을 때에,, 이제,, 전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혹은 염려, 혹은 걱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 오직 하나님의 평안만이 내 마음속에서 지배할 뿐. 주님이 처음 나를 내가 두려워 하는 것들에서 해방시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생각속에,, 이 악한 것 대신,, 그분의 평안이 있는것을 발견하고서 아주 놀라곤 했습니다,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 주님, 언제 당신이 오셔서 나를 이 두려운 것들에서 해방시키셨습니까 ? " 그건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 . 나는 아주 많은 크리스챤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자유게 했다는 말을,,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봅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여전히 걱정과 염려를 낳는 그 두려움들에 종살이(노예상태)에 있는 것을. 로마서 8:15 절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 " 이는 너희가 다시는 두려움에 종살이 시키는 영을 받지 않았음이라 ; 대신 너희가 양자의 영을 받았음이라,, 이로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 라고 외쳐 부름이라 ". 얼마나 여러번 내가 외쳐 불렀었던지,, " 아버지, 나를 이 두려움,, 내 생각들을 장악 통제하려는,, 내가 그것의 종(섬기는 자)이 되게하는 이 두려움에서 구해주십시오! " 라고
주님이 나를 그러한 첫 번째로의 두려움들, 내가 주님께 드리므로서, 그것들로부터 나를 해방 시켰을 때,, 그분 말씀을 향한 내 믿음이 엄청 강력하게 성장했고,, 그분 사랑과 힘(능력)에 대한 내 신앙(확신)도 엄청 증가했습니다.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신,,이 자유함,, 내 두려움들로부터 해방 된,, 그것에 너무 도취되어,,내가 원한 전부는 그분의 영으로 더 드리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내 믿음(신앙)은 아주 많이 성장했고,, 나는 보고 싶어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몇 몇 거짓말 하는 영들이 내 생각속으로 슬슬 기어들어 오려는 것을, 이는, 내가 주님을 부르는 그 순간,, 그분이 그 동일한 것을, 이러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영들에게 행하리란 것을 알았기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골리앗에게 행했던 거와 같은 것, 그 애굽 군대에게 행하였던 그것을. 내가 무신론자 였을 때,, 나는 생각했더랬습니다,, 사람이 이런 상태의 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마약을 가지고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그런데 그것은 오직 임시적일 뿐이곤 했습니다 ; 하지만 예수님이 당신을 자유게 하면, 당신은 진짜(실재)로 자유합니다. 나는 생각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두렵게 하는 더러운 영들로부터 예수님이 나를 해방시키셨는지를 기억할수 있다고,, 하지만 틀림없이,, " 군단 " 의 수효와 동일한 횟수임에 틀림없습니다. 정직히 말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수의 두려움들이 내 안에 살고 있었던지를 믿을수가 없습니다,,진정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말한 대로입니다,, 그 두려움, 그 두려움으로, 그것이 위협(테러)이든, 혹은 스트레서(긴장), 혹은 불안, 혹은 불확실, 혹은 공포, 혹은 걱정이든,, 오직 사람의 생각들속으로 고문을 유발시킬 뿐입니다..
나는 여전히 이러한 것들을 두고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이러한 악한 영들을 내 쫓음으로서 그 자신이 얼마나 강력하고, 크 신 분이신지에 대해,, 그때 다시 그 동일한 메시지가 또 다시 내 컴푸터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 " 상자 A 혹은 상자 B를 선택하십시오"; 상자 A 에는 다음의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 이 서류철을 간직하고 유지 하십시오 " ; 그리고 상자 B 에는 쓰여 있었습니다, " 이 서류철에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입니다,,그래서 당신이 그것에 맞춰 살 필요가 없도록. * 주님, 나는 선택합니다 당신이 내 생각(사고)으로부터 모든 두려움들을 지우길 ". 나는 그때 지켜봤습니다, 상자 A 아래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쓰여 있는 것을, " 두려움은 고문한다" ; 그리고 그때 나는 보게 되었습니다,, 상자 B 아래로 시편 34:4 절에 기록된 말씀이 쓰여져 있는 것을 " 내가 여호와(주님)께 구하였더니,, 내 말을 들으시고,, 그가 나를 모든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서 해방시키셨(구하셨)다 " . 나는 그때 말했습니다,, 조금도 망스림 없이 그리고 선택했습니다, 상자 B 를, 다음과 같이 기도하면서,, " 주님, 당신인 것은(당신으로 된 것이) 고문하는 것이 없습니다 ; 주님 나를 구하여 주십시오 모든 이러한 두려움들로부터,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내 정신의 생각에서 지워주십시오 .
내가 이 말을 하자 말자, 또 다른 서류철이 내 컴푸터에 나타났습니다,, 이 서류철의 제목은 " 내 욕구들과 기쁨들 " 이었습니다. 내 앞으로 나타났던 모든 서류철 중에서,, 이것이, 주님이 바로 얼마전,, 내게 드러내 보여주신 것으로,, 가장 근자의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 모든 인간의 기쁨과 욕구은 그 자신 속에 있는 그 지혜에 의해 그에게 강요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세상 지혜가 그 " 옛 사람 " 속의 의식속에 거하고 있다면 ; 그럼 그는 오직 그 기쁨을 그 육의 욕구들과, 눈의 그 욕구들을 만족시키는데서 얻고, 혹은/그리고 그 " 옛 사람 "의 의식(생각)은 자긍심(자존감)입니다 ; 그리고 주님이 내게 일러주었습니다,, 자긍심(긍지)은 " 자기(자아) 사랑의 의식이라고. 이 세상 지혜는 오직 "자기(자아)"를 기쁘게 하고파 하는 욕구를 가질 뿐이라고 ; 그것은 저런것들 안에서 스스로를 기쁘게 한다고, 자기-영광, 혹은 자기-도움, 혹은 자기- 의(로움), 혹은 자기-높임, 혹은 자기-의지, 혹은 자기-탐익, 혹은 자기-확신, 혹은 자기-확신, 혹은 자기-조종, 혹은 자기-중요, 혹은 자기-만족, 그리고 물론,, 한 사람이 그 자신으로서 가지고 있는 그 이미지를 높이거나,, 확대시키는 그런 것안에서..
" 자기(자아) "의 그 기쁨과 바라는 것들을 만족시키는 이는 하나님과의 어떤 교통, 혹은 어떤 사귐도 없이 그렇게 합니다 ; 이는 이 세상 지혜로 된 그 욕구들과 그 기쁨들을 쫓아 행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친구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기록 된 것처럼, 이 세상과 친구된 자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세상의 친구된 자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자들인데,, 왜냐함 그들은 전혀 하나님과 교통 하고픈 욕구도 없고,, 그들은 그들의 그분과의 사귐에서 어떤 기쁨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때 기억했습니다,, 주님이 여지 껏 내게 준 계시들 중 가장 놀라운 것들 중의 하나,, 예수님이 그분의 뒤를 따르기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지라고 요구하셨던 십자가에 관련한 것을. 내가 크리스챤으로서 어린아이였을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가 가진 것을 전부 팔고서는 그리고서 어디 멀리 떨어진 이국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으로. 그때 내 생각이 좀 더 발전하여서는,, 한 사람이 그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가 그 자신의 욕구들과 기쁨들을 그 자신의 의지적- 힘과 자기통제(절제)로서 이기는 것 정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나는 살수 있는 더 불행한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이러한 것을 행하려 시도하는 것보다. 나는 어느 날,, 내가 받고 있는 압박에 대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내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그분의 말씀을 두고 내가 하는 해석과 관련하여 ; 주님이 내게 물었습니다, " 미트, 너가 하고 있는 것 속에 생명이 있느냐 ? 내가 네게 지라고 했던 십자가는 사망의 결과물(열매)를 낳지(맺지) 않는다, 대신 생명의 열매들을 맺는다. 너가 하고 있는 그것 속에 어둠으로부터의 자유함이 있느냐 ? " 나는 그때 대답했습니다, " 주님, 나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오직 비참함 만이 ; 내 자신이 아닌 어떻것을 해보려고 하는 ". 나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실수하고 있었다는 것을 왜냐함 나는 또 다시 성경 구절 해석에서 내 자신의 이해(총명)함을 의지했었기에.
그래서 내가 주님께 이 십자가,, 주님이 우리에게 지라고 요구하셨던,, 이것과 관련하여,, 진실(진리)을 가르쳐 달라 주님께 구했을 때,, 주의 영이 먼저 나를 고린도전서 1:18,19 절로 이끄셨습니다 " 십자가의 메시지(복음)가 죽어가고(소멸해가고)있는 자들에게 어리석은 것이나, 구원받고 있는 우리에겐,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힘)이다 ; 이는 기록된 바, " 내가 지혜자들의 지혜를 멸하고(파괴하고), 현자들의 이해함(총명)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들 것이다 ". 나는,, 꼭 다른 모든이들처럼,, 성경말씀을 해석하기 위해,, 그 자신의 총명(이해함)에 기댄체,,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이 갈보리 십자가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 예수님이 달려 죽으셨던. 하지만 그때,, 그 계시(드러냄)가 왔습니다 ; " 아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만약 우리가 그분을 따르기 원한다면, 지라고 하셨던 그 십자가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 그 말씀이다 ; 십자가,, 그것으로서 우리가 바로 그 근원에 대해 죽는,, 그 근원(바탕)으로부터 모든 이 세상 욕구들과 그 기쁨들이 나온다(태어난다0 : 이 세상 지혜. 이 지혜를 파괴해라(죽여라) 그리고 그 모든 육의 기쁨들과 욕구들을,, 더불어,, 모든 악한 일(들)을. 우리 하나님의 능력(힘)으로 그냥 녹여 없애라,, 그 소멸하는 불 되신 분의.
그 때 였습니다,, 주님이 나를 이사야 29:13,14 절로 이끄신 것이 " 이로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 이 백성이 그들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그들 입술로는 나를 높이나, 그들이 그들 마음은 내게서 멀리 이동 시켰도다,, 그래서 나를 향한 그들의 두려움도 인간 교훈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 ; 그러므로, 보라, 내가 나가서 한 기이한 일을 행할 것이다,, 이 백성 가운데서,, 심지어 한 놀라운 일, 한 신기한 일(“a marvelous work and a wonder” )을 : 이는 그들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가 쇠멸할 것이요,, 그 들 현자들의 총명함(이해함)이 숨겨질 것이다". 놀랐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 동일한 구절을 계속 반복할 수 있는지를 두고,, 실재론 전혀 의미가 없는데,, ; 그때 갑자기 그분이 당신(내) 눈을 여셨고,,그 진리를 봅니다,, 언제나 당신앞에 있었던,, 하지만 당신(내가)이 눈이 멀어 보지 못했던 것을. 기록된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말씀에서 주님(여호와)이 “ 한 놀라운 일과 한 신기한 일 (a marvelous work and a wonder)” 로 묘사한 다른 것은 결코 없습니다,, 여기서 기록하고 있는 것 외에는. 나는, 그냥 보통 다른 크리스챤들 처럼, 그 길(방법)을 찾아 구했습니다,, 우리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 달라고 ; 그 길,, 그것으로 우리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더 깊이 깊이 들어갈수 있도록,, 더불어 그분과 더욱 더 깊은 교통과 사귐을 갖도록. 그분의 임재로부터 나오는 " 그 생명" 을 맞 봤던 어떤이는 심히 갈구합니다,, 그분을 더 깊이 알기를 ; 하지만 문제는 " 어떻게 ? " 이냐 입니다 사실인즉, 여기 그 해답이 나를 빤히 똑 바로 하고 내 얼굴앞에 있었습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이 말씀으로.
그때 나는 이해했습니다,, 주님이 내게 지라고 요구했던 그 십자가가 우리를 그런 어떤 비참한 종살이(억압)상태속으로 몰아넣는 어떤것이 아니란 것을,, 내가 처음 생각했었던 거와 같은,, 대신 그것은 영교(교통), 사귐, 사랑, 친교의 회복(복구)이었습니다,, 우리 하늘의 아버지와의. 그것이 여기였습니다,, 주님이 내게 드러내신것이(계시하신것이), 마귀가 모든 거짓들의 아버지인 것처럼, 이세상 지혜는 그 어머니입니다,, 그기로서 그것들 모두가 잉태되어,, 밖으로 나옮니다(태어납니다). 그녀는 모든 더러운 것, 모든 악, 모든 불신(믿지못함)과 의심, 모든 사악, 모든 두려움들, 모든 불경(신성모독), 모든 죄속에서의 욕구들과 기쁨들, 더불어 모든 생각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조언(생각)들과 지시함들에 대적하여 그 스스로를 높이는,, 그런 모든 것의 어머니(어미)입니다. 우리중 아무도, 이 세상속으로 우리속에 거주하는 사탄과 함께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세상속으로 태어났습니다,,,우리의 육의 정신속에 거주하는, 이 세상 지혜를 가지고서. 이 세상 지혜는, 육의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그 사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그 어둠입니다,, 자연의 정신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 전혀 하나님과 교통함도, 혹은 사랑도, 혹은 사귐도 없는.
나는 그때,, 주님께 물었습니다,, 내 십자가를 지고서 이 지혜에 대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 그러자 주님이 내게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너가 어떤 생각하나, 혹은 어떤 상상하나,, 이 세상 지혜로부터 나오는, 그것을 심판(판단)하고서, 그리고 너가 그때 그것을 내 앞에 고백할 때,, , 너는 그 생각에 그 순간 죽는다,, 너가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것이 아니라고 선포할 때에,,; 그리고 일딴 너가 이 선언을 하면,, 그때 내가 와서 싸운다,, 너를 위해(대신해) 그리고는 그 거짓의 생각을 너의 생각(사고)밖으로 내 던져서,, 이 지혜,, 그것(거짓의 생각)이 나온,, 그것을 파괴한다. 나 주(여호와)가 이 것을 말했다, 나 주(여호와)가 이 것을 수행 한다 ". 내 마음은 말 그대로 완전히 미쳐 날 뛰었습니다 ; 내가 해야 할 전부는 이러한 생각들을 심판(판단)하는 것이었고,, 그 주님의 제단위에 내 선물로서 선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님의 그 능력(힘)이 와서 그 일,, 나로서는 하기가 불가능한, 그것을 행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 그 욕구들과 기쁨,, 내 마음속의,, 그리고 그 생각들,, 내 정신속의,, 그것들을 바꿔주는것을. 그때였습니다,, 진정코,, 이해하게 된 것이,, 왜 예수님이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지를 ; 이는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우리 십자가를 질때에,, 우리는 육인 그것에 죽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영으로 된 그것이 우리 생명(삶)속에서 실제 물질(구체)화 되도록(현현). 하나님께 영광이 있을지으다 . 진정코,, 나는 내 육의 기쁨들, 욕구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마음이 원하는 전부는 하나님과 사귐속에,, 교통속에 있는 것입니다 ; 이는 그분의 임재함속엔 너무 많은 기쁨이 있기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지혜는,, 하나님의 영적인 것들을 기쁘해 하는 그것입니다 ; 그리고 이 지혜는 하나님의 계명 지키길 사랑합니다,, 그분을 바탕으로 믿어,, 그 분을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이 고유한 하늘영의 그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한 사람이 (소유하길) 갈망하는 것 중 가장 최고의 바랄 것입니다. 그녀(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친교하는 것을 사랑합니다,,그리고 오직 그녀로 인해,, 둘이 하나가 됩니다,, 그 동일한 욕구들과 기쁨들을 가지므로서.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기때문입니다,, 그분과 사귀고,, 교통(얘기)하도록 ; 타락된(품질이 떨어진)인간성 속에는 어떤 욕구 혹은 기쁨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러한 친교(사귐)와 혹은 교통(영교)를 가짐을 두고 왜냐하면 육은 영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 육이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길 사랑하는 것 만큼,, 그 만큼,, 또 그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길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우리 하늘 아버지가 그분 영의 선물들(은사들)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여호와)를 기쁘하고,, 대신 " 자기 (자아) " 를 사랑하지 않도록. 자긍심은 오직 " 자기(자아) " 를 사랑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신)의 사랑은 " 자기(자아) " 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그 지혜를 사랑합니다,, 왜냐함 그녀(하나님의 지혜)가 나를 내가 그렇게나 갈망하고 원하는 그 교통(얘기)과 사귐속으로 더 가까이 이끌기 때문입니다,, 내 하늘 아버지와 가지고파 하는 ,, (그 교통과 사귐)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때 다시한번,, 내 컴푸터 화면에 그것,,다음과 같이 쓰여진 것이 나타났습니다, " 상자 A 혹은 상자 B 를 선택하십시오 " ; 상자 A 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 이 서류철은 간직하고 유지하십시오 " ; 상자 B 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 이 서류철속에 있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에 맞춰 살지 않도록 . * 주님, 나는 선택합니다,, 당신이 그것은 내 생각(사고)속에서 지우길 ". 나는 그때 지켜봤습니다,, 상자 A 아래로 히브리서 11:24-25 절에 기록된 그 말씀이 쓰여 있는 것을 " 믿음으로 모세는 그가 나이 들었을 때에,, 바로 딸의 아들이라 불리길 거절했다 ; 대신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당하길 선택했다,, 한 시기 동안 죄의 쾌락들을 즐기기 보다 ". 그 구절은 또 디모데 후서 3:1 절의 그 말씀과 동반되었는데,, " 말일에 위기의 때가 올 것이다 ; 이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사랑하며,, 하나님 사랑하기보단,, 더 쾌락(기쁨)들을 더 사랑할 것이니 ; 그런자에게서 돌아서라 ". 그때 나는 상자 B 아래로 갈라디아서 5:24 절에 쓰여진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리스도의 것된 자들은 육을 그 애정과 욕구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 그 말씀은 또 시편 37:4-6 절에 쓰여진 그 말씀과 나란히 있었습니다 " 주(여호와)로 기쁘하라,, 그가 네게 너희 마음의 그 욕구들을 주시리라, 너희 길을 주께 맡기라 ; 또한 그를 신뢰하므로,, 그분이 그 일이 일어나게 하라 " . 다시, 나는 신속히 버튼 B 를 눌렀습니다,, 다시금 다음과 같이 말하며, " 주님, 나는 이 세상과는 " 어떤 " 친교도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 당신이 내 속의 그 지혜 모두를 지워주시겠습니까 ,, 당신과 반대되는,, 그 세상욕구들과 기쁨들을 낳는 ? "
나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알았습니다,, 내 컴푸터 화면에 나타날 화면의 그 다음 서류철이 마지막 문서라는 것을,,, 깨끗히 헹구어진채,,지워져야 할 것으로 ; 그리고 바로 그 다음순간,, 그 서류철이 내 앞으로 딱 튀어 올랐습니다, 그것은 제목이 " 나의 삶(생명) " 이었습니다. 내가 이 문서를 열었을 때,, 나는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미 내가 다른 문서들 속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것이란 것을,,그것은 단지 내 삶의 관한 간증문 이었습니다,, 내가 18 살때,,쯤해서 시작되는 것으로. 나는 생각컨데,, 내가 18 살이되기 전의 내 삶은 기록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의 내 삶은 실재,, 나의 삶이 아니라,, 대신 내 부모님의 정한 규칙이나 지시에 의한 삶이었습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나의 첫 번째 일자리는 어떤 은행이었습니다 ; 그기서 일한 나의 첫 번째 년도 끝에,,나는 나의 " 년말 결산(year end review) " 속으로 데려가졌습니다. 나는 전에 결코 그런 어떤것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결산 동안, 나는 들었습니다,, 내가 그기 첫 해에 동일 직종의 모든이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원으로 일했다고. 내가 그 다음 날, 일하러 갔을 때,, 나는 내 사직서를 건넸습니다 ; 그것은 그들 모두를가 놀라게 했을뿐만 아니라,, 나 자신또한 놀라게 했습니다. 그 결산 이후,, 나는 고향으로 갔습니다,, 내가 들었던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면서,,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훌륭하게 일을 수행했을찌라도,, 나는 어떤 즐거움, 혹은 "생명"을 내 직장 업무가운데서 얻지 못했다는 것을 ; 그리고 그 결산이 나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만두는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을. 나는 자주 궁금해 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 결산을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오래 그 은행에서 계속해 일했을까 하고,, 내가 그 일속에서 "전혀 생명" 이 없음을 깨닫지 못한채로..
내가 28 살쯤이 되자, 나는 그 은행에서 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콜게이트사(Colgate-Palmolive)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습니다 ; 나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있는 월스트리트( Wall Street at the New York Stock Exchange)에서 일했습니다 ; 나는 부동산 브로커가 되었습니다 ; 나는 건축 청부업자가 되었습니다,, 그기서,, 나는 또 개인적으로 내가 짓는 집들을 설계했습니다 ; 나는 또 수상미끄럼틀을 개발하여,, 제작했습니다,,, 그것들이 미 합중국 전역에 걸쳐,, 건설되고 있을적에. 70 년대 후반,, 한번의 불경기동안엔,, 생계를 위해 포커게임도 했습니다,, 그러한 날들의 대부분은 골프, 혹은 산냥, 낚시, 등으로 보내면서. 나는 내 친구들 중의 어떤이들이 말하길,, 그들이 은퇴 후에나,, 가지길 소망하는 것을 내가 하고 있다고''''' .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있었던 어떤것에서도 생명을 전혀 발견할수 없었습니다.
나는 정말 내 아내를 미치게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정말 돈을 잘 벌기 시작하면,, 그만 두고 했습니다 ; 나는 그때에 그만 두었더랬습니다,, 왜냐함,, 내가 돈을 잘 벌 쯤 되면,, 역시,, 그 동일한 양만큼,, 나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것에서,, 전혀, 생명, 혹은 즐거움이 없다는 것을 ; 이는 내가 내 자신 스스로에게 " 년말 결산들을 " 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서 전혀 즐거움 혹은 생명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면,, 그땐,,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있던 것을 그만 두고,, 계속 옮겨갔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생명)을,, 올바른 "직장/직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 당시 내내,, 나는 눈이 멀어, 내 전 삶(생명)이 완전히 어떻게 나의 무신론적 믿음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보지 못했더랬습니다 왜냐함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어떤 것 속에서도,, 전혀 생명을 발견할수 없었기때문이었습니다 ; 아무리 재미있고, 혹은 다른사람에게 멋져 보였을찌라도. 어떤 즐거움을, 혹은 만족을, 혹은 평안을, 혹은 영광을 발견하긴 아주 어려웠습니다 ,, 사람들(당신)이 하는 것에서 당신이 그것을 영원 무궁토록 지속시키려 할 때에 ; 이는 그것이 정확히 나,이 무신론자가 지속시키려 시도했었던 것인데,, 왜냐함,, 내가 믿지 않았기때문이었습니다,, 사망후에 어떤 류의 생명(삶)이 있다는 것을. 나는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내 삶속에서 가졌던 유일한 희망은 어쩐지 과학자는 다소간의 비밀을 알아 내리라,,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토록 살도록 해 줄,,그런 기대가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 그 많은 죽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삶의 이때 동안은..
내가 27 살이었을 때,, 한 사람,, 내가 그 당시 가장 친한 친구로 여겼던,, 이가 내 아내와 나와 더불어 저녁을 하려 건너왔습니다 ; 우리가 식사하길 끝내고,, 우리 모두는 그 잡담 놀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내 친구된 그와 그 아내가 내 아내와 내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전혀 몰랐습니다,, 이 사람이 크리스챤 이었다는 것을,, 나는 즉각적으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가 감히 내 자신 집안으로 들어와,, 그 처럼 혐오스러운 주제에 대해 감히 말하려 했다는 것에 대해,, 내가 누구와도 시간을 내어 결코,,얘기하려 조차 않는것을.. 나는 그 하나님이란 주제가 미웠고 증오스러웠습니다,, 그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 어떻게 이 사람이 감히 ", 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가 어떤것을 말했습니다,, 내가 결코 들은적이 없는,, 이는 그가 말하길,, 만약 누구든 예수를 그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그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실것이라는 것이고 ; 그리고 성령은 한 사람의 생명을 바꿔놓는 하나님의 능력(힘)이라 했습니다 . 나는 최소한 궁금해졌습니다,, 그가 말한 것에 대해,, 왜냐함,, 나는 결코,, 그런 거룩한 영 이란 것에 대한 어떤 것도 들은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하나님이 있다면,, 그럼 왜 그가 어떤 사람의 생명(삶)을 바꿔놓으려는 욕구를 가질까 ? 내 친구와 그의 아내는 계속해서 내 아내와 내게 최소한 30분 더 이상을 증거했음에도,나는 결코 그들이 말한 다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함,, 나,,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성령과 한 사람의 생명(삶)을 바꿔놓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나는 의아하기조차 했습니다,,어떻게 나와 같은 녀석이 남부에서 거의 27 년을 자라며 살수 있었는지,, 소의 바이블 벨트(* Bible belt)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그리고 결코 전에 이와 같은 어떤 것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이 말이 나의 흥미를 자극시켰지만,, 나는 내 삶속에서 별로 필요한 어떤 것은 아니다 라고 느꼈습니다,, 그 당시로선,, 왜냐하면 나는 내가 바꿔져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지 않았기때문이었습니다.
* Bible Belt : (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한 인간의 삶에서 상황이 그렇게나 급변할 수 있다니 ; 이후 약 3 년동안, 내 삶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내 아빠는, 그때까지,, 나의 가장 최고의 친구였고,, 후원자였는데 그분이 그냥 죽었습니다,, 내 가슴에 하나의 크다란 구멍,, 텅 빈것을 남긴채로. 이것은 그 당시,, 내 아버지의 사업체와,, 그의 재산과 관련,, 내게 거짓된 고소들이 이어지게 했습니다 ; 그리고 내가 존중했던 모든이들이 나를 비난하는 그 거짓된 고소들을 믿는 듯 했는데,, 내 아내와,, 그 친구,, 내게 주님에 대해 증거했던 그 친구조차도.. 나는 무참하게 짓밟혔고,, 그것은 나로선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이 탐욕때문에 그런 일들을 말하고,, 행할것이란 것이. 이것이 내 삶에서 그렇게 큰 중압감과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았던지,, 나는 내 고향 땅으로 되 돌아갔습니다,, 내 아버지의 업체와 재산을 처리하는것과 관련 돕기 위해,그리고서 나는 또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게 될 지를,, 내 아버지의 업체가 매각되고서,, 그분의 재산이 정리된 이후..
나는 이미 직업을 추구해 봤더랬습니다,, 내가 만족과 기쁨, 내적 평온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직업을,그리고 하나도 발견치 못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망을 두고 비탄스러웠습니다 ; 나는 크게 화가 났고,, 그 거짓된 고소들,, 나를 두고 한,, 그것에 증오가 가득 했습니다 ; 하지만 나는 전적으로 무서웠습니다,, 내 남은 삶 전부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어디에도 행복이, 혹은 만족이, 혹은 평온이, 내가 하길 원했던 그러한 것 어디에도 없었음을 알았기에 ? 나의 온 날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득찬 채로였습니다, 깊은 슬픔이든, 혹은 무자비한 분노,,혹은 두려움, 혹은 최악의 모든 것, 절망 ; 내가 내 아빠에 대해서, 혹은 그분의 재산에 대해,, 혹은 내가 내 나머지 삶을 어떻게 영위할까,, 어느것을 생각하느냐에 좌우된 채로...
마침내 하루아침에 깨어났고,,, 그리고 내 아내쪽으로 돌아누워서는 말했습니다,, 내가 되돌아가겠다고,, ,,내가 내 고향땅으로 왔을때,, 떠나왔었던 그 도시, Mt. Pleasant 으로 ;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가 그러고 싶다면,, 갈수 있을거라고. 이틀 후,, 우리는 떠났습니다, 첫 번째,, 그 첫날 아침,, Mt. Pleasant 으로 돌아온,, 내 아내는 우리 두 아이를 데리고,, 식료품점으로 갔었었는데,,그러자,, 나는 그 거처(굴)에 오직 내 혼자 뿐이었습니다. 내가 그기 그 굴에 섰을 때,, 그건 내게 내가 그 순간이 왔었다고,, 뭔가 일을 벌여야 할,, 왜냐하면,, 나는 그냥 그런 고통고문 가운에서,, 조금도 더 살수가 없었기때문이었습니다. 난,, 나는 그것을,, 말해야 할 ,,하고싶지는 않습니다,,하지만 심지어 자살의 충동마저,, 들었습니다 ; 하지만 그 생각,, 은 한 무신론자에겐,, 그런 마지막 선택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모든 슬픔,, 내 모든 화, 내 모든 절망,, 모든 것이 내게 그 동일한 순간에 겹쳐왔었고 ; 그것은 한꺼번에 밀려오는 그런 것인데,, 나는 그냥 내 두 무릎이 무너지고,, 마루에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이 다메섹( Damascus다마스크스: 시리아 수도)으로 가던 바울이 길위에서 겪었던 거에 비교할만 하다 들리긴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내겐, 그것은 훨 씬 더 극적이어습니다 왜냐함, 바울은 최소한 한 신(a God : 하나님) 이 있다는 것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한 사람의 무신론자였던 상태에서,, 구원받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 이해가 가능치 않을 것입니다,, 한 순간,, 당신이 믿음이 없는 상태로부터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완전한 믿음의 상태로 나아갈 때 오는 그 충격을. 나는 한 자리에서 뒤흔들릴 정도로 떨면서 최소한 두 시간 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내게 실재,, 막 무슨일이 일어났던지를 전혀 모른 채. 나는 크게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능력이 이제 내게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무지함 때문에,, 특히 성령에 대한,, 나는 다음에 무슨일이 일어날지도 몰랐습니다. 나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난 방금 막 내게 일어난 것에 대해 설명할 수도,, 이성적으로 어떤 논리적 설명을 할수 없었기에...
내가 떨면서,, 두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성령이 내게 임한 후, 곧 바로,, 내 삶(생명)이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전에 한번 있었더랬는데,, 그때 나는 19 살때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당했을 때였습니다. 나는 차의 뒤좌석에 앉아있었는데,, 시속 119 마일(190km)로 달리다가 도로를 벗어나 버렸고,, 그 운전수는 죽었습니다. 그 잠시 몇 초간,, 그 차는 6~7 번 정도 끝없이 갔습니다, 내 삶이 실재로,, 내 눈앞에서 확 나타났습니다 ; 그것은 마치 모든것이 또한 슬로비데오 같았습니다. 그것이 이번은 완전히 그 처음것과는 달랐습니다,,그 속,,그 충돌에서,,나는 내 삶 전부에서,, 전혀 악한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나는 내 굴(거처)에 있었는데,, 모든 것,,내가 본,, 그것이 내 눈앞에,,확 나타났는데,, 모두가 완전히 악했습니다.
그건 나를 아주 두렵게 해서 그러한 것들 중 어떤 것이든 다시 할까 무서웠습니다. 여러 해 들이 지나곤 했는데,, 그때 어느날 아침 내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주님이 그 날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그리고서 그분이 말했습니다, " 미트, 나는 너를 공포에 빠뜨리고저 하는 것이 아니다,, 너가 본 그 악을 가지고서, 그 보단,, 나는 너에게 내 사랑이 너를 두고 용서하고 있었던 그 악들 전부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 그리고서 주의 영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주의 음성인 것을,, 내게 전에 말했었던,, 그가 내게 베드로 전서 4:8-9 절에 쓰여진 말씀 " 무엇보다 열심을 내어 서로 사랑하라, 이는 사랑은 허다한 죄들을 덮음이라." 를 상기시켰습니다. 내가 여전히 그 굴에서 떨면서 있을때에,, 내 속의 주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나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거의 일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슬픔, 모든 화남, 모든 절망이 그 사망에 대한 두려움,, 나를 매일 고문해왔었던 ,, 그것과 더불어 그냥 사라졌습니다,, 모두,, 내 생각속에서.
그때,, 그 첫날 끝자락에,, 나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분이 내게 뭘 원하시는지를, 그러자 그분이 말하여 이르길, " 가서 성경을 한 권 사라, 그것으로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내가 너를 가르칠 것이다, 내가 너에게 내가 너 삶속에서 하길 원하는 모든 것들을 보 일 것이다 ". 내 마음이 얻었습니다 ; 이는 주(님)안에서 나는 마침내,, 찾았더랬습니다,, 내가 찾고는 있었으나,, 결코 내 자신 힘으론 찾을 수가 없었던 그것 : 생명(삶)!!! 그분의 음성속엔,, 아주 많은 위로, 안전,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첫 번째 몇 달에 걸쳐,,나는 낼 수 있는 매분,, 매 시간을 , 그냥 이 신비한 하나님,, 나를 헛 된 사망의 삶으로부터 날 구하려 오신,, 이 신이 누구신지를 알기 위해 구하여 찾는데 보냈습니다. 나를 보지못하게 하는 종교의 교리가 전혀 없었으므로,, 나는 그냥 어린 아이 같이 되어,, 믿었습니다,, 주님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분이 할수 있는 걸로,, 그분이 나를 위해 하실 것으로,, 만약 내가 그냥 구한다면..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주님께 구하였습니다,, 나를 바꿔 달라고,,그리고 그 재미가 시작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해야 할 전부가 믿고서 기다리는 것이라면,, ,,주님이 오셔서,, 그분이 내가 믿고 구한 것을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기까지,, 그리고 그것은 즐거움입니다. 내가 무신론자였을 때,, 나는 거의 한 문장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어떤 무례하고,,혹은 욕하는, 혹은 신성모독적인 방식의 말이 내 입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는. 갑자기,,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주님이 보이셨습니다,, 그냥 그분의 능력,, 나를 향한,, 그것이 얼마나 큰 지를,,그때 그분은 나를 담배피우는 것에서 해방시켰습니다 ; 이는 나는 18 년동안 ,, 평균 하루에 두갑 반정도를 피워 왔었기때문입니다. 흡연에 중독되었던 분들만이 이해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될 려면,, 그냥 어떤 종류의 큰 힘이 요구되는지를. 나는 밤 낮 기도했습니다,, 약 한달을 기다렸습니다, 갑자기,, 일요일 아침,, 나는 하나님의 음성에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했습니다, " 내가 너를 해방시켰다 ". 정말이었습니다, 주님은 내게서 담배 피우고픈 욕망을 가져 갔을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은 내 정신,, " 너 담배 필요해 " 라고 말하는, 그 생각을 빼어 가 버렸습니다. 다른 흡연자들 처럼,, 나는 여러번 내 스스로 담배를 끊으려,, 시도해 봤더랬습니다,,결코 끊을수가 없었습니다 ; 사실, 나는 그것에 절망적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진정 하나님의 그 능력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 마음속에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때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께 나를 통제할수 없는 급한 성격에서 구해달라고.
최소한으로 말해서,, 그건 이제 매일 접하는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특히 주께서 뭘 하실지를 모른 채,, 그냥 그분이 뭔가를 행하실 것이란 믿음을 가지므로서'''''갑자기. 주께서 나를 27 년 전 나를 불렀을 때,, 그때가 죽은자로부터의 그 첫 번째 부활이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일으키신 ; 내가 행하여 찾았던 그 어디에서도 어떤 목적, 혹은 생명을 찾을 수 없었던,,그 생명으로부터. 나는 이 당시 거의 몰랐더랬습니다,, 하지만 그분 영의 이른 비는 곧 끝 날 참이었습니다.
나는 주님과의,, 나의 새로운 관계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에 가야하는 일이 없이 ; 이는 주님이 날 불렀을 때 나는 홀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갈 필요를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얼마 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내가 가기 원하는 곳 인 교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 나는 흥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한 교회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다른 이들이 나처럼 주님과 교통하며, 친교하고 어떤 곳으로 ; 그리고 내가 오늘 날 말해 보자면,, 내가 겪었던 가장 큰 실망은,, 그 교회들의 상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많은 이들을 발견했습니다,, 주님과 친교하며 교통 하고파 하는 ,,하지만 그 자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로서 있길 원하시는 것을 바라는 자들이 ? 그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 " 주 여호와가 그 집을 세우지 않음,, 그 백성이 헛 되이 수고한다 ? " 라는. 이 말씀이 어떤 시멘트 벽돌, 혹은 목재로 지은 건물을 말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건물들에 거하시지 않습니다 ; 그리고 이것은 내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왜 내가 그기 그기 아주 많은 죽은자들의 모임들에 가고 있었는지를.. 하지만 나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처음 교회에 가기 시작했을 때에.
나는 그 당시 내가 주님을 행해 가졌던 그 동일한 열정을 가진 다른이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나는 그때,, 그 동일한 죽은 교리들, 그들을 올가 매었었던 그것에 역시 굴복해 버렸습니다 ; 그리고 그때 나는 내 (믿음) 여정의 그 " 암흑기 "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종교가 내 교리가 되었습니다. 나는 실재,, 정말 그 인간들의 계명들에 굴복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 예컨데, 나는 내가 내 주변의 모든이들에게 가서 복으을 전해야 한다 들었고,,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들었습니다,,내가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그랬습니다. 나는 들었습니다 내가 불쌍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그랬습니다. 나는 들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자들에게 가서 방문해야 한다고,그래서 나는 그랫습니다. 나는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들었습니다,, 저렇게 해야한다고,, 그래서 나는 저렇게 했습니다. 이런것이 몇 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한 날,, 내가 깨닫기 까지,,, 내가 모든 이런 의로운 일들,, 내가 생각하기로,, 나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정확히 그 반대가 있었고,, 내 마음은 실재,, 점점 더 멀어진 채 였습니다,, 내가 무엇보다도 원했었던,, 교통과 사귐을 갈망했던 그분으로부터..
그때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앞에 인정하면서,,얼마나 내가 주님을 원하는지,, 얼마나 내가 그분과의 사귐속으로 되돌아 가길 원하는지를. 나는 또한 그분께 묻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 좁고,, 협잡한 길,,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에서 잘못 벗어 났다면,, 왜냐함 내가 더 이상 그분의 평안과 기쁨의 임재(현존)을 내 삶(생명)속 어디에서도 발견치 못했으므로. 나는 부르짖었습니다, " 주님, 나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하지만 제발 절 불쌍히 여기시고,, 내게 되돌릴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시오 " 라고. 그때 하루아침에 내가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19, 20절에 기록된 말씀을 " 너희가 하나님이 한분 계신것을 믿는다,, 잘 한다 ; 하지만 사탄들(귀신들)또한 믿고,, 그들이 뜬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느냐 오 무익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 " 처음에 나는 모욕감을 느꼈습니다,,나는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왜 주님이 이 말씀을 내게 말해 주고자 선택하였을까를 두고,, 내가 심히 알고파 했던 것은 주님의 그 마음속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그 길(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실재,, 내 믿음과 내 행함(일함)들에 대해선,, 듣고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냥 모두 실천 했는데,,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주간 기도하고 난 후,, 이 문제에 대한 혼란과 죄절에 전투를 치르고 있었는데,, 마침내 주님이 말씀하여 이르셨습니다, " 미트, 만약 내가 너의 마음속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면,, 그럼 너의 믿음(신앙)은 죽었다 ". 최소한으로 말해서,,, 나는 이 말에 경악하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방금 막 말한 것이 내가 생각한 그 야고보서의 말씀이 의미와는 완전히 반대였기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두고 가르치는 것을 여러번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나는 이 말씀을 들을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이해를 담고 있는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이,,내 믿음을 수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잠언 21:16 절에 기록되어 있길,, " 이해함(총명)의 길 밖에서 방황하는 그 사람은 정령 죽은자의 회중가운데 머물리라 " ; 세상에,, 이제 그것이 명백하게 분명했습니다,, 내가, 이것이 정확히 내게 일어났던 일인것을 알아본 것이 ; 이는 내가 내 자신의 이해함을 야고보서 2:19, 20 절에 적용 했을때,, 내가 내 자신의 해석으로 인해 주님으로부터 벗어나 버린 것이기 때문인 것을 ; 주님과의 내 사귐과 교통함이 그 날수에 더해 점점 더 차가워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내 눈을 열어주셨고,,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이해함을 그분의 말씀에 적용했을 때,, 그때 그것이 하나님을 완전히 그 실제 바깥으로 떠나게 했던 것입니다,,왜냐하면 내 촞점이 오직 내 자신이 일하여 노력하는 것들에 집중되었기때문이었습니다 ; 하지만 진실(진리)이 왔을 때,, 내 눈은 열렸고,, 보게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 관계된 것임을.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던 그 순간까지는,, 나는 언제나 그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고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영은 언제나 나를 그러한 놀라운 곳들속으로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주님이 언제나,, 내 삶속에서 일하고(역사하고)있는 상태속으로 ;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로 내게 무엇을 할 것인가,, 말하도록 했을 때,, 그 일들은 미트가 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나는 분명하게 이제 볼수 있었습니다,, 죽은자들의 종교는 그들의 믿음(신앙)은 그들 자신의 행함들과 노력들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믿는 그 회중들(집회)에 관계된 것(속한 것)임을. 주님이 야고보서 속의 이 말씀을 내게 하신 후 얼마 안되어,, 그분이 또 말했습니다, " 미트, 너가 너의 교리로 종교가 되게 할수도 있고, 혹은 너가 너의 교리로 생명이 되게 할수도 있다 ; 내가 이 세상속으로 와 있다,, 그래서 너가 생명을 가지고,,그것을 풍성히 넘치도록 가질 수 있도록. 나는 이 날 너 앞에 한 선택권을 둔다,, 생명 과 사망의 ; 그 죽은자들의 회중(모임)이든, 아님 그 산자들의 회중(집회, 모임)이든 ; 그 선택은 너가 하는 것이다. 기억해라,, 그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 하나님은 산자들의 하나님(신)인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영광이 있을 지어다)! 이는 이 말씀과 더불어,, 주님이 나를 그 산자들의 땅(지면)속으로 다시 되돌려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 그 산자들,, 그기의 하나님이 주인(Lord)으로 믿어지는 그리고 그기서 그분이 계속해서(continually) 그 자신을 크게, 강대하게(great and mighty) ,,그분의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자들을 위해, 그분이 역사하는 일들 가운데서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시는..
내가 그 산자들의 땅(지면)의 길로 다시 되돌아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성경말씀에 내 자신의 이해함(총명)을 별 생각없이 적용하므로서,,생명으로 연결 된 그 길에서,, 떠났었더랬는데,,그 생각들로 완전히 삼킴을 당할정도였습니다 ; 내 자신의 해석으로 내가 하나님과의 교통함과 사귐에서 벗어나 걸었다는.. 내 자신의 이해함(총명)이 나를 속였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동일한 실수,, 어리석음,, 모든 이들이 떨어지는, 우리가 잠언 3:5 절 여호와를 너의 온 마음으로 신뢰하고; 너 자신의 이해함에 기대지 말라(개역개정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KJV Trust in the LORD with all thine heart; and lean not unto thine own understanding. ; NIV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and lean not on your own understanding ; NASB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And do not lean on your own understanding. ) " 고 기록된 그 교훈를 가벼히 여길때,,떨어지는,, 그 실수로의 밥(먹이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앎니다 이것이 그 넓고 쉬운 길이란 것을,, 사람을 바로 그 죽은자들의 모임(회중)속으로 인도하는 ; 그 회중(모임), 그들의 신앙(믿음)이 그들 자신의 일함들을 수반하는,, 하나님이 지금 그들을 향해 한 그분의 약속함 어느것도 수행할 것이란 것에 전혀 믿음이 없는. 나는 이제야 배워 알았습니다,, 인간들이 그들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그들자신의 노력을 들여 그 일함을 통해 하려 하는 한,, , 그들은 결코,, 어떤 사귐이나 혹은 교통함도 그들 하늘 아버지와 경험할수 없을 것임을 ; 오직 주님의 임재하심에서만,, 한 인간은 정령 발견할 것입니다,, 그 생명,, 심히 모두가 원하고 바래지는,,그것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2:19,20 절을 그리고 주님이 내게 잘못이해한 것을 어떻게 교정해 주셨는지를 ; 죽은자로부터의 나의 두번째 부활(되살아남) . 그 가장 놀랍고,, 부드런 말씀들 중의 하나,, 주님이 여지 껏 내게 일러 말씀하셨던,, 것 중의,,하나가 이 교정해줌속에 있엇습니다 ; 이는 주님이 나를 교정해 주고 있었을 때,, 나는 아주 두려웠습니다,, 나의 실수중의 가장 심대한 것때문에 ; 그때,, 주님이 내게 일러 말씀하시길,, " 미트,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진짜로 죽은자를 살리는데는 아주 능숙하기 때문이다 ".
주님이 내게 이 때에 가르쳤습니다,, 만약 내가 그분이 내 속에서 어떤 일 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다면,, 그때 나의 촛점은 그분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과 ; 그리고 내가 내 촞 점을 완전히 그분을 향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때 였습니다,, 내가 내 스스로 속에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진정코, 생명과 사망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나 있었는지에 대해,, 내가 결코,, 그 죽은자(들)의 모임(회중)을 이해하지 못하여서, 아님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그들 삶(생명)속에서 일하도록 하게 하지 않았던 자들로 정의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예수님이 요한복음 10:10 " 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속으로 들어왔다,, 너희가 생명을 갖도록,,그것을 풍성히 갖도록 하기 위해". 나는 앎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풍성한 생명이 그들이 재정적으로 안전을 확보했을때 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 하지만 나는 이미 그 길에선 내리막이 되었다는 것과 그리고 그것에서 생명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인간들의 이미지가 그것(생명,삶)에 새겨지게 한 그것. 죽은 것들(사망한 것들)은 생명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그들)은 그냥 육의 욕망들을 만족시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거짓 기만들에 대해,, 누가복음 12:15 절에서 다음과 같이 "--- 이는 한 인간의 생명(삶)이 그가 소유한 그것들의 풍족함에 있지 않음이라 ". 고. 나는 기억했습니다,, 내가 무신론자 였을 때,, 그때 나는 정확히 그것들(소유한 것들의 풍족함)이 삶(생명)에 풍족함을 가져다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 당신의 직장 같은 것들, 아님,, 당신이 좋아하는 취미들이나, 아님 당신의 소요한 것들에서, 아님, 당신의 기뻐하는 것들이나, 욕구들을 만족시킴가운데서 ; 하지만 나는 틀렸습니다(아니었습니다).
나는 발견했습니다,, 한 인간의 욕구들과 기뻐하는 것(pleasures : 쾌락)들이 실재 아무것도 아님을,, 감옥일 뿐 ; 그기서 매일 또 다른 내일의 희망의 신기루로 있는; 즉, 아무리 많은 욕구들과 기뻐하는것들을,, 오늘 당신이 만족시키든, 내일이면,, 당신은 그 동일한 욕구들과 기뻐하는 것들,, 전체 모두가 다시 충족되어져야 하는,, 것들로 깨어 납니다. 육으로 걸어가는(행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매일은 동일한 것입니다, 언제나 동일한 욕구들과 기뻐하는것들을 반복해서 다시 충족(만족)시키는데서 생명(삶)을 얻으러 하는. 그때 그것,, 전에 기쁨이 되었던,, 그것이 충족되어지지 않음 안되는 하나의 중독물이 됩니다. 육으로 걷는 자들의 유일한 바램(소망)은 그 내일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낳은 날이 될 거야 라는 ; 하지만 그 내일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나는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이 나를 이 사고(생각)에서 구해(해방시켜)준 것에.
주님이 내게서 야고보서 2:19,20 절 이해(해석)를 고쳐 주었을때,, 나는 또 볼수 있었습니다,, 그 죽은자(들)의 모임( the congregation of the dead:(예배의 모인)사람들,회중,신도, 교인)들 중의 사람들에 속해 머물고 있는 모든 자들의 실수함을 ; 그리고 그들은 또 찾아구합니다,, 사망(죽으있는)의 것들을 통해서 생명을 얻으려 ; 그들 자신의 의로움(공의), 그들 자신의 일함(행위)들, 그들 자신의 선한 것, 그들 자신의 영광, 그들 자신의 노력함들 같은 것들을 ; 그 핵심 단어는,, " 자신/자기가 한" 입니다. 이스라엘은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들이 그 율법의 일함(행위)들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발견했습니다, 바로 꼭 나처럼,, 그러한 생각은 오직 여러분을 그 헛된 망상들,, 당신이 뭔가를 당신의 노력함들로서 달성했다는,,그 무익한 망상으로 속였을 뿐이란 것을 ; 전혀 주님의 임재(현존)가 없는. 만약 우리가 스스로 속여,, 우리가 진정한 생명을 우리 자신(자아)의 어떤 것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생각토록 만든다면,, 그럼,, 우린 예수님이 요한복음 14:6 절에서 한 말씀 " 내가 그 길이요, 그 진리(참)이요, 그 생명이다. 어떤 인간도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오지 못한다 ". 라는 그것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내가 그 곳에 앉은 채 이 말씀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말씀, 그기의 예수님이 말한, " 내가 그 생명이다 " 가 그 냥 나 쪽을 향해 계속 튀어 나왔습니다, ; 헌데,, 그 생명이 무엇이지 ?
나는 여전히 심히 알고팠습니다,, 이 생명이 무엇일까 그때 주님이 내게 이르러 말했습니다, " 미트, 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이해지 못하는 구나. 너는 너가 너의 뜻(your will : 의지)한 것을 얻을 때,, 혹은 너가 너의 기뻐하는 것, 혹은 욕구들을 충족시킬 때, 혹은 일들이 너가 원한대로 되어갈때,, 너가 생명(삶)을 경험한다 생각한다 ; 하지만 이것은 오직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 이는 이런식으로,, 너가 생명을 경험할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일(상황)들이 너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진행되는 가는 한동안은. 일 딴 일들이 너가 뜻(의지)한 대로 혹은 너가 그것들을 계획한 대로 되어가면,, 그렇다면 어디에 너의 생명이 있느냐 ? 내가 생명이다 ; 내가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내 본질(성질,성품)이다. 내 영의 열매들(결과물)이 내 생명의 그 성품(성질, 본성, 본질)이다. 내가 영원히 지속되는 기쁨(즐거움, 만족,환희)과 평강(평화, 평안)이다. 내가 사랑이다, 내가 그기 없으면 생명도 없고 사망도 없다,, 생명일뿐. 내가 생명이다 처한 환경들과 상황들이 어떠한가는 상관없이 왜냐함 내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변하지가 않는다. 내가 사랑이다 ; 그리고 내 사랑이 그 생명이다 ". 주님이 내게 이 말 하기를 끝 냈을 때,, 그때 주의 영이 내게 요한 1서 3:14 절에 있는 그 말씀을 소생시켰습니다 " 우리가 아는 바,,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왜냐함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그는 사망에 거한다". 나는 그제야 생명의 한 정의를 가졌더랬습니다,, 내가 전에 늘 바랐었던,, 하지만 결코 생명으로 정의내리지 못했던 것의 : 그 하나님의 사랑.
나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곡해되어졌다 위선자들에 의해(연기하는 것으로) ; 그들의 거짓된 문안 인사들과 안아주는 것, 생명없는 미소지음, 신실치가 못한 느낌들, 속이는 말들로서, 사랑하는 척 하는 자들에 의해. 나는 어떤것도 알지 못한다,, 한 인간이 (사랑하는) 척 하는 것보다 더 모독적인 것을,, 그 속에 있는 그 사랑이 하나님의 그 사랑과 같은 것이라,, 척하는 것 보다. 너에게 솔찍히 말하건데,, 그것은 내게 매번 이런것을 볼때마다,, 나를 토해 내고픈 역겨움을 자아낸다 ; 한가지는 확실하다,, 척 하면서 행하는자(걸어가는자)들,, 그들은 전혀 하나님속에 있는 그 사랑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전혀 길이와 혹은 넓비,, 깊이의 한도가 없는,, 사랑의,, 그것을, 전혀 경계와,, 제한하는 한도가 없는.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여전히 사망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왜냐하면 내가 " 아직도" 이 사랑을 가지지 못했기때문에, 내속에 머무르는 것으로 그리고 만약 내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다시금 옮겨가게 될 것이면,, 나는 알았습니다,, 주님이 나를 다시금 세번째로 되살려(부활시켜) 놓아야 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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