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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 하늘샘 " 님 시리즈 :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가 ?

danieell 2015. 11. 10. 17:48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가 ?



번역들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장 절       개역 성경 (틀린 번역)         kjv 영어 성경                     헬라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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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30   구름을 타고 능력으로         coming in the clouds         ejpi; (위에) tw'n nefelw'n
마 26:64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coming in the clouds         ejpi; (위에) tw'n nefelw'n
막 13:26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coming in the clouds         ejn (안에) nefevlai"
막 14:62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coming in the clouds         meta (함께); tw'n nefelw'n
눅 21:27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   coming in the cloud           ejn (안에) nefevlh/
계 1:7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cometh with clouds             meta (함께); tw'n nefelw'n
계 11:12   구름을 타고 하늘로             up to heaven in a cloud   ejn (안에) th' / nefevlh /

구름은 땅과 바다에서 수증기가 공중에 올라와서 물방울이나 얼음이 되어 하늘에 떠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름’ 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 실존을 깨닫게 하는 징조이며 비유입니다.
기록된바 ‘이러므로 우리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의 구름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그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그 경주를 달려가자‘
(히 12:1) 하였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운송수단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이루어진 초월의 실존입니다.
그들이 구름과 같은 영적 실존을 이루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구름의 증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름에는 검은 구름과 흰 구름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을 때에는 검은 구름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는 있으나, 그의 증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사는 존재가 될 때 흰 구름이 되고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에 증거 됩니다.

부활의 실존은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하늘에 올라 있습니다.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직 구름이나 하늘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린 실존이 구름이며,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으므로 거기가 하늘입니다.

사도행전에 부활하신 예수의 승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바 ‘이 말씀들을 하시고 그들이 보는 가운데 올리어 가실 때에
구름이 그를 받아서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올라가실 때에 그들은 그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라,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그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로부터 그 하늘로 올리신 바로 그 예수는
너희가 그 하늘로 가신 것을 본 것과 같이 오시리라.‘ (행 1:9-11)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동수단으로 구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름은 왜 그를 받아서 제자들의 눈에 그가 보이지 않게 한 것일까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 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름이 나타난 것은 예수의 제자들 자신이 구름인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흰 구름이 아닙니다.
구름이 예수를 가린 것 같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받았으나, 아직 그를 가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흰 구름이 된 때에, 비로소 예수는 그들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증거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나,
그들 곁에 섰던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영의 하늘 (그들의 마음 하늘) 을 바라보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너희 눈앞에서 하늘로 올려 가신 것’ 은 ‘징조’ 요,
‘실상’ 은 ‘너희 마음 하늘에 그가 올라가셨다’ 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 하늘에 올라가신 그는
언제든지 구름과 같이 그들의 영의 실존과 함께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그가 하늘로 올려 가신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오셔서 그들이 구름이 되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육신의 첫 사람의 생각을 좇아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록된바 ‘보라, 그가 그 구름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그리고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그 땅의 그 모든 족속들이 그를 인하여 슬퍼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번역본들이
‘그가 구름을 타고 (meta; 는 ’구름들과 함께‘ 임) 오실 것이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그 때문에 그는 언제나 보이는 존재인 구름의 실존이 된 증인들과 함께 오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구름의 실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이들이 구름으로 징조 된 거룩한 부활의 실존을 이루려하지 않고,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 하는 모든 족속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그리스도로 그들 안에 오신다는 것을 알 때에, 그들은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순교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드러난 나의 죽음입니다.
그것은 나의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진리이시니까, 진리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리를 보여 달라고 하고, 교회는 그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말씀에서 ‘계명을 지켜라’ 하는 것은 행동으로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마음에 품어라, 그것이 마음이 되게 하라’ 입니다.

계시록 20 장 4 절에 짐승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대적자입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존재이며 능력입니다.

(내 안에서 나의 선악지식과 나의 율법적 열심과 나의 행함으로 나의 욕망을 위해 섬기려 하는 존재.)

계시록에 보면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 죽었는데,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 노릇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때를 생각해서 여기서 이 악물고 참으면 왕관을 주시겠지’ 생각합니다.
‘잘 참으면, 잘 못 참은 사람보다 차별된 상급을 주시겠지’ 바라면서.

로마서 3 장에 ‘하나님께서 한 의를 나타내셨는데, 그 의는 차별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억지로 참아서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높이) 왕 노릇 하겠다는 마음은
숨겨진 진짜 기복신앙입니다.

(천국의 상태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이기에 모두가 왕입니다.
먼저 진리가 된 자가 섬기는 것이며, ‘섬기는 자가 큰 자’ 라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필요한 것을 구하는 순진하고 순수한 기도를 하십시오.
이 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남보다 눈에 띄는 일을 하고,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보상이 더 클 것을 기대하는 심리,
그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기대,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 세우기로 표현된 순교와 희생,
그 ‘두 마음’, ‘탐심’ 으로 반영된 마음의 해석이 ‘순교, 희생, 헌신’ 일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원문에는 '그 예수의 (여기는 ‘그리스도’ 가 없습니다) 증언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위하여‘ 입니다.
역사적으로 눈에 보이는 예수, 그 사람으로 오셔서 보이신 모든 것들 (말, 기적, 표적),
역사적 예수가 보이신 그것을 통해서 진짜 ‘하나님의 그 말씀’ 을 알게 된 자들을
‘목 베임을 당한 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 베임’ 이라는 말은 단순히 목을 자른다는 것이 아니라,
‘목을 자르고 머리를 다른 것으로 바꿔준다’ 는 의미입니다.
내 생각이 죽어서 율법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율법을 진리로 알아들은 자들에게는
머리가 바뀌어 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내가 아직 진리가 되어 있지 못한 상태라면,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 죽이겠다는 상황이 와도  
억지로 그렇게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순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빠져나와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네요' 하며 주님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수가 가야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역사상의 그 예수를 믿으면 안 됩니다.
그 예수를 보고 그 예수를 한 사람도 그리스도로 알아볼 수 없었기에 그 예수를 죽였습니다.
보여 질 수 없는 것인 그 그리스도가 오시려면,
역사상의 예수가 가고 진리의 영인 그리스도가 오셔야 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고 그리스도입니다. ‘성령 받으라’ 는 말은 ‘그리스도가 되라’ 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바깥 어디엔가 계시지 않고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 를 부정하십니다.
‘너 아니야. 너 죽고 내가 사는 거야.’
나도 살고 그리스도도 사는 것은 되지 않습니다.

예수는 내 밖에서 말씀을 던지십니다.
'믿는다‘ 는 것은 '행함' 의 반대되는 이야기 입니다. ’마음으로 간직하라‘ 는 이야기 입니다.
믿음은 계시록에 나오는 주님의 이름입니다. - ‘충신’
믿음도 너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네요...’ 라는 깨달음이 있다면,
‘정말 있음’ 을 향해서 손을 펴야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 주신다고 하신 그것 (성령, 진리, 그리스도, 그 영)’ 을 주세요.” 하며
그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빚’. 하나님이 태초에 주시겠다고 하신 그것을 주세요.” 라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는 내 밖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 말씀은 ‘법’ 입니다.
나에게 ‘지켜야 하는 법과 기준’ 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증언’ 은 ‘율법’ 입니다.

그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 인 ‘진리 (언약, 은혜)’ 로 알아듣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율법이 아닌 진리로 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이걸 이렇게 해야지’ 하고 보여주는 자들이 아니라,
그것을 진리로 ‘간직하는 자들’ 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진리로 알아들을 때 (예수의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합니다.
율법을 들을 때, 그 껍데기를 깨뜨리고 그 속에 든 진리를 알게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숨겨져 있는데, 아는 것입니다.

‘살아서’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살아있는 떡이다.
'그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신 그 '살아서' 입니다.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 :
그 제물들은 율법을 진리로 알아들어서 머리가 바뀌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
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그분으로, 그리스도가 되어, 그리스도로.

‘천년 동안’ :
'완성' 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영생으로 살지 못하는 인간을 표현할 때 구백 몇 십 살이라고 합니다.
'천년' 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이라는 말입니다.

‘왕 노릇 하니’ : 바실리오 바실레이아. 하나님의 나라. 천국.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섬김의 나라.

‘하나님’ : 진리, 말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영원히 왕 노릇 하는 것’ :
우리가 그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진리로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

주신 말씀이 진리가 된 자들.
‘내가 아니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거구나.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거구나‘ 라는 진짜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은혜를 은혜로 흘려주십니다.
법이 밖에 있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외적인 율법에 의해 다스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통해서, 이걸 통해 나를 죽이고 살리시려는 성령과 진리와 생명의 법,
이것을 안 자들에게는 해방과 자유가 있고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결코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순교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드러난 나의 죽음입니다.
그것은 나의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진리이시니까, 진리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리를 보여 달라고 하고, 교회는 그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말씀에서 ‘계명을 지켜라’ 하는 것은 행동으로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마음에 품어라, 그것이 마음이 되게 하라’ 입니다.

계시록 20 장 4 절에 짐승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대적자입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존재이며 능력입니다.

(내 안에서 나의 선악지식과 나의 율법적 열심과 나의 행함으로 나의 욕망을 위해 섬기려 하는 존재.)

계시록에 보면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 죽었는데,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 노릇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때를 생각해서 여기서 이 악물고 참으면 왕관을 주시겠지’ 생각합니다.
‘잘 참으면, 잘 못 참은 사람보다 차별된 상급을 주시겠지’ 바라면서.

로마서 3 장에 ‘하나님께서 한 의를 나타내셨는데, 그 의는 차별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억지로 참아서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높이) 왕 노릇 하겠다는 마음은
숨겨진 진짜 기복신앙입니다.

(천국의 상태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이기에 모두가 왕입니다.
먼저 진리가 된 자가 섬기는 것이며, ‘섬기는 자가 큰 자’ 라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필요한 것을 구하는 순진하고 순수한 기도를 하십시오.
이 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남보다 눈에 띄는 일을 하고,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보상이 더 클 것을 기대하는 심리,
그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기대,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 세우기로 표현된 순교와 희생,
그 ‘두 마음’, ‘탐심’ 으로 반영된 마음의 해석이 ‘순교, 희생, 헌신’ 일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원문에는 '그 예수의 (여기는 ‘그리스도’ 가 없습니다) 증언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위하여‘ 입니다.
역사적으로 눈에 보이는 예수, 그 사람으로 오셔서 보이신 모든 것들 (말, 기적, 표적),
역사적 예수가 보이신 그것을 통해서 진짜 ‘하나님의 그 말씀’ 을 알게 된 자들을
‘목 베임을 당한 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 베임’ 이라는 말은 단순히 목을 자른다는 것이 아니라,
‘목을 자르고 머리를 다른 것으로 바꿔준다’ 는 의미입니다.
내 생각이 죽어서 율법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율법을 진리로 알아들은 자들에게는
머리가 바뀌어 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내가 아직 진리가 되어 있지 못한 상태라면,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 죽이겠다는 상황이 와도  
억지로 그렇게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순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빠져나와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네요' 하며 주님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수가 가야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역사상의 그 예수를 믿으면 안 됩니다.
그 예수를 보고 그 예수를 한 사람도 그리스도로 알아볼 수 없었기에 그 예수를 죽였습니다.
보여 질 수 없는 것인 그 그리스도가 오시려면,
역사상의 예수가 가고 진리의 영인 그리스도가 오셔야 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고 그리스도입니다. ‘성령 받으라’ 는 말은 ‘그리스도가 되라’ 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바깥 어디엔가 계시지 않고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 를 부정하십니다.
‘너 아니야. 너 죽고 내가 사는 거야.’
나도 살고 그리스도도 사는 것은 되지 않습니다.

예수는 내 밖에서 말씀을 던지십니다.
'믿는다‘ 는 것은 '행함' 의 반대되는 이야기 입니다. ’마음으로 간직하라‘ 는 이야기 입니다.
믿음은 계시록에 나오는 주님의 이름입니다. - ‘충신’
믿음도 너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네요...’ 라는 깨달음이 있다면,
‘정말 있음’ 을 향해서 손을 펴야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 주신다고 하신 그것 (성령, 진리, 그리스도, 그 영)’ 을 주세요.” 하며
그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빚’. 하나님이 태초에 주시겠다고 하신 그것을 주세요.” 라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는 내 밖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 말씀은 ‘법’ 입니다.
나에게 ‘지켜야 하는 법과 기준’ 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증언’ 은 ‘율법’ 입니다.

그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 인 ‘진리 (언약, 은혜)’ 로 알아듣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율법이 아닌 진리로 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이걸 이렇게 해야지’ 하고 보여주는 자들이 아니라,
그것을 진리로 ‘간직하는 자들’ 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진리로 알아들을 때 (예수의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합니다.
율법을 들을 때, 그 껍데기를 깨뜨리고 그 속에 든 진리를 알게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숨겨져 있는데, 아는 것입니다.

‘살아서’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살아있는 떡이다.
'그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신 그 '살아서' 입니다.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 :
그 제물들은 율법을 진리로 알아들어서 머리가 바뀌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
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그분으로, 그리스도가 되어, 그리스도로.

‘천년 동안’ :
'완성' 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영생으로 살지 못하는 인간을 표현할 때 구백 몇 십 살이라고 합니다.
'천년' 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이라는 말입니다.

‘왕 노릇 하니’ : 바실리오 바실레이아. 하나님의 나라. 천국.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섬김의 나라.

‘하나님’ : 진리, 말씀.

‘우리가 그리스도로 영원히 왕 노릇 하는 것’ :
우리가 그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진리로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

주신 말씀이 진리가 된 자들.
‘내가 아니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거구나.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거구나‘ 라는 진짜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은혜를 은혜로 흘려주십니다.
법이 밖에 있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외적인 율법에 의해 다스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통해서, 이걸 통해 나를 죽이고 살리시려는 성령과 진리와 생명의 법,
이것을 안 자들에게는 해방과 자유가 있고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결코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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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 하늘샘 " 님이 제 댓글 코너에 숨기기로 올려준 내용입니다.

저 다니엘이 이것을 그대로 올리는 것은,,, 이것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진실(진리)일 가능성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제가 아직 풀지 못한 의문은 다음회,,, " 하늘샘 " 님 시리즈에 올리겠습니다..